[단독] 소싸움꾼도 못하는 '파산자' 취업 제한 폐지 추진

입력 2021-08-08 14:34   수정 2021-08-08 16:37


빚을 갚지 못해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은 개인에 가해지는 271개 취업·자격 제한을 철폐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개인파산 신청자가 연간 5만명을 웃도는 상황에서 파산선고 만으로 직업을 박탈하고 자격증 취득도 원천봉쇄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에서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파산에 따른 각종 취업·자격 제한 폐지를 위해 국회미래연구원법 등 234개 법률 개정안을 조만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 겸 여당 간사인 박 의원은 올 초부터 서울회생법원·참여연대 등과 법 개정을 준비해왔다.

현행 채무자회생법 제32조의2는 “누구든지 파산절차 중에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취업 제한이나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법·변호사법 등 234개 개별법에서는 파산선고를 받은 개인에 대해 취업과 자격 등을 제한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파산자에 대한 취업 결격사유·자격제한 규정을 두고 “변화된 경제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낡은 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자본주의 경제질서에서 파산은 개인의 경제활동 진전에 따라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취업기회를 박탈하는 등 반사회적·범죄적 행위로 낙인을 찍는 건 과도한 처사라는 이유에서다. 법원도 최근 이같은 취지를 반영한 개정의견을 박 의원에 제출했다.

개인파산 신청자 수는 2018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5만명을 돌파해 최근 5년 새 최고치를 찍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가 늘어난 데다 직장인들도 근로소득이 크게 줄어들면서 대거 파산위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파산에 따른 각종 취업·자격제한 폐지를 위해 대표 발의하는 개정안은 무려 234개 개별법을 대상으로 한다. 각 개별법 개정안을 심의할 소관 상임위원회만도 17개에 달한다.

그만큼 파산자가 취업이나 자격 취득에 있어서 받는 제한은 광범위하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재 파산선고를 취업·자격 등 결격사유로 규정한 법률조항은 234개법에 걸쳐 모두 271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취업과 관련해서는 공직 당연퇴직 또는 임용 결격사유로 규정한 법률들이 있다. 국가공무원법이나 지방공무원법, 경찰공무원법 등이 대표적이다.

파산선고를 받으면 전문직 자격증 취득이나 해당 업무 종사도 불가능해진다. 변호사법, 공인회계사법, 법무사법, 세무사법 등은 파산선고를 전문직 등록 거부나 취소사유로 들고 있다.

국가의 인허가가 필요한 대부분의 사업도 영위할 수 없다. 건설산업기본법이나 학원법 등은 파산선고를 영업행위 인허가의 실효 또는 취소사유로 규정했다.

경비원, 아이돌보미, 결혼중개업자, 보험설계사 등 직업에서도 파산선고는 결격사유 중 하나로 제시돼 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참여나 국비유학시험 응시자격 등도 파산자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은 파산선고를 소싸움꾼(싸움소 주인)의 결격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박 의원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파산을 신청하는 서민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파산자에 대한 취업·자격제한을 철폐해 재출발을 돕자는 취지로 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도 파산자에 대한 과도한 취업·자격 규제는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와 달리 개인파산이 빈번해진 상황에서 파산을 이유로 개인의 온갖 법률상 자격을 제한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미 2007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의사·치과의사·한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의 결격사유에서 파산선고가 제외됐다. 공직선거법도 파산자의 대통령·국회의원·자치단체장 등 선출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해외사례를 보면 미국은 파산자에 대한 고용상 차별대우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은 파산자의 취업·자격제한에 대한 규정이 없다. 다만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개별법상 취업 등 제한 규정이 있다.

파산자에 대한 규제 완화가 자칫 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파산자에 패자부활의 기회를 줄 필요에는 공감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인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며 “파산에 본인의 중대한 과실이 있거나 고의성이 인정되는 경우엔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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